차 자체는 진짜와 가짜의 구분이 없습니다. 그러나 남을 속이려고 유명 브랜드의 진품을 비슷하게 모방해서 판매한다면 가짜가 됩니다. 또한 진기가 5년인 차를 10년이라고 속여서 판다면 이것 역시 넓은 의미의 가짜차가 됩니다. 노반장이 아닌데 노반장 포장지를 써서 제작했다면 이것 역시 가짜의 범주에 들어갑니다. 습창에 넣어서 억지로 곰팡이 발효를 시킨 뒤 일정 기간 거풍을 한 뒤에 진년보이차로 판매한다면 이것도 가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한다면 그런 차들 역시 차 자체는 진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이차의 진위 문제를 거론할 때 개념정리부터 확실하게 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애호가들에게는 어쩌면 쉽게 받아들여지기 힘든 얘기일 수도 있습니다만, 보이차를 볼 때 상품의 진위보다는 품질의 선악을 논하는 게 더 합리적입니다. 유명 브랜드의 진품이라고 다 좋은 것도 아니고 모방해서 만든 가짜라고 해서 반드시 품질이 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가짜의 차품이 진짜를 넘어서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만, 가끔 진품보다 더 좋은 경우도 볼 수 있는 게 보이차의 세계입니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차도 진짜이고 차품도 좋은 것입니다.

보이차의 진위를 살펴보고 차품을 따지려면 보이차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합니다. 이제부터 가짜 보이차를 어떻게 구별하는가를 차근차근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앞으로 여러차례에 걸쳐 다양한 케이스를 들어서 설명할 텐데 독자여러분이 이 칼럼을 보면서 '아, 이런 식으로 보이차를 감별하는구나'라는 느낌을 가진다면 이 글의 목적은 달성됩니다. 

맹해차창의 차로 나온 것 중에 하나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이 차는 97년에 나온 맹해차창의 수람인水藍印이라는 7572 숙병입니다. 포장 가운데 차 자가 녹색인데 약간 파란색이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파란색을 남색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물에 번진듯이 모호합니다. 그래서 물에 번진듯한 남색 도장이라는 뜻으로 수람인이라고 합니다. 예전에는 이런 포장지 중간에 손으로 일일이 차 자를 찍었는데 대개는 녹색이지만 다른 색깔도 다양하게 쓰였습니다. 이 색깔을 보고 녹인이니 황인이니, 홍인이니 하는 구분을 하는 것입니다.

포장지를 보면 찻물이 배어나와 있습니다. 수람인은 대개 이런 경우가 많은데 포장지만 봐도 이 차가 습도가 높은 곳에 보관되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차가 습창차라는 것은 아닙니다.

병면을 보면 멀쩡합니다.

내부에도 백상 같은 것은 없습니다.

앞면을 봐도 전체적으로 깨끗합니다.

내비를보면 97년 혹은 98년에 나온 차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맹해차창의 창 자를 보면 굵은 간체자로 쓰여 있습니다. 이런 내비는 97, 98년 2년 동안 맹해차창에서 중차패로 나온 차의 내비에 쓰였습니다.

병면을 보면 노차의 풍격이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차를 우려봤는데 차품도 이만하면 좋습니다. 내포성도 좋고 창미도 없고 부드러우면서 감칠맛이 많습니다. 자연습을 먹은 것이 흠이긴 하나 크게 흠잡을만한 것은 아닙니다.

엽저도 비교적 깔끔합니다.

그런데 이 차는 가짜입니다.

진지동의 심수적칠자세계에 97년 수람인 숙병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오른쪽 위의 내비 사진을 보세요. 전체적으로 인쇄 상태가 진합니다. 외포장의 인쇄상태가 부분적으로 연하게 나오는 경우는 흔합니다만 내비는 그런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가끔 이렇게 차품이 아닌 내비만으로도 진위를 구별할 수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위에 소개한 차는 가짜라고는 해도 아주 잘 만든 가짜입니다. 음용에도 무리가 없고 차품도 좋은 편입니다.

보이차를 감별할 때에는 참고할 수 있는 자료가 있다면 적극 활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위에 언급했던 진지동의 심수적칠자세계같은 책은 현재로서는 가장 권위있는 참고서입니다. 물론 그 안에 있는 내용이 전부 옳은 것은 아닙니다만 대개는 문제없이 믿을 수 있습니다.